여 행 에 미 치 다/IN KOREA

[경주] 우정여행

김코지 2018. 2. 23. 19:38

2018.02.22-23. 우정여행
한 달 전쯤. 어느 카페에서 우연히 흘러나온 대화. "우리 제대로 여행 간 적이 없어. 앞으로는 시간 맞추기 더 힘들텐데."
가까운 곳이라도 좋으니 어디든 가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된 경주여행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이야기 했던 건데, 진심으로 나와 여행을 원하는 세영이의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울산에서 1시간 밖에 소요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지만, 그냥 설렜다.

설 전에는 여행계획을 짜기 위해 즉흥 약속을 잡았다. 여행 일주일 전 쯤이었다. 세영이가 자주 간다던 달동의 한 카페에서 계획을 세우고, 급하게 숙소도 잡고. 처음에는 펜션을 잡으려고 했지만 적당한 가격에 적당히 좋은 숙소는 이미 솔드아웃.. 그냥 아무데서나 자도 된다는 마음으로 그냥 네이버에 검색했다. 경주역 근처 게스트하우스를 검색해서 가장 먼저 나온 곳은 바람곳 게스트하우스. 후기도 나쁘지 않길래 그냥 거기서 묵기로 했다!

2/22. 목요일. 날씨 맑으나 밤에는 쌀쌀함.
대망의 여행 첫날. 아침 9시에 솔잎임상 채혈이 있어서 급히 자연관에 들러야 했다. 저번에도 소변검사를 했었는데 또 깜빡 잊고 화장실을 갔다와버렸다. 양이 얼마 되지 않아 죄송했다. 부랴부랴 검사를 끝내고 합성동으로 갔다. 10시 차를 놓치는 바람에 10시 40분 차를 예매했다. 잘됐지 뭐, 채혈할 때 준 김밥 한 줄을 꾸역꾸역 입에 넣었다. 마산에서 바로 경주로 갈 수 있지만 명색에 우정여행인데, 세영이와 같이 기차를 타고 가고 싶어서 울산에 갔다. 꾸벅꾸벅 졸다가 터미널에 도착하니 세영이가 이미 와있었다. 12시쯤이었는데.. 배가 고픈 세영이는 결국 파리바게트에 들러서 빵을 샀다. 태화강역에 가는 버스가 없어서(우리가 못찾은 것 같지만) 택시를 탔다. 기차표를 예매한 후 화장실에 들렀다가 올라갔다.



하늘 참 파랗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괜히 더 설레었다. 옆에 있던 이쁜 네살배기 꼬마아가씨와 잘생긴 꼬마오빠를 만났다. 새침떼기였다, 그래도 자꾸 눈길이 갔다. 어찌 그렇게 얼굴들이 고운지 너무 귀여웠다. 역시 유전자의 힘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많은 여행객들 사이에 섞여서 기차에 탑승했다. 우리 생각보다 사람이 많아서 정말 놀랬다. (그리고 하나같이 다들 같은 곳으로 향하더라. 몇 번을 마주쳤는지 모른다.)


경주역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탄 택시는 참 인상깊었다. 꽃과 나비로 알록달록 꾸며져있어서 엄청 신기해하니까 택시아저씨께서 이쁜 아가씨들 태우려고 예쁘게 꾸몄다는 센스있는 말까지 해주셨다. 기분좋게 황리단길에 내려서 걸었다. "우리가 검색했던 가게들이 다있어!!" 설레는 마음을 뒤로 미루고 우선 밥부터 먹기로 했다. '시즈닝'이라는 가게가 유명하길래 거기서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조금 멀었다. 지나가는 길에 마음에 드는 골목길이 있어서 삼각대를 펼친 후 포즈를 취했다. 그러나 우리의 비율이 똥망이라 그런지 사진은 건지지 못했다. 그러나 황남탕 앞에서 찍은 사진이 마음에 들었다. 세영이와 나는 둘 다 감성적이라 참 좋다. 귀찮아하지 않고 열심히 사진을 찍었지.


드디어 가게 앞에 도착했다. 유명한 가게라 그런지 역시나 웨이팅이 엄청났다. 무료하게 기다리고 싶진 않아서 예약리스트에 이름을 적고 다른 골목에서 놀다가 다시 오기로 했다. 또 다시 삼각대를 펼쳐서 사진을 찍어댔다. 아까보단 귀엽게 나왔다. 우리는 삼각대를 처음 쓰니까 괜찮아.. 이정도는 잘 나온거야.. 마음의 위로와 함께 가게 앞으로 돌아갔으나 아직도 어마어마한 웨이팅. 반대쪽 골목에 가서 또 한 컷 찍었다.



뭔가 촉이 올 때가 있다. 아, 이제는 가야 해. 뭔가 우리 차례가 온 것 같아. 이런 느낌이 들 땐 빨리 돌아가야 한다. 참 신기하게도, 다시 가게 앞으로 도착하니 곧 우리 차례였다. 한옥을 개조해 만든 식당은 참 경주다웠다. 아름다웠다. 식당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주문을 받기 때문에 급히 인터넷을 검색해서 메뉴를 정했다. 대표메뉴인 시즈닝파스타는 맵다고 하기에, 매운 것을 잘 먹지 못하는 나를 배려해 크림파스타와 프라운 라이스를 먹기로 했다.


곧바로 들어간 식당은 인테리어가 참 예뻤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오는 만큼 인테리어도 돋보였지만 세영이와 내가 감탄한 부분은 플레이팅이었다. 그릇이 너무나도 우리의 취향을 저격해버렸다. 그 뿐일까? 메뉴를 정하면서 웨이팅한 만큼 음식이 나를 보상해주지 못하면 엄청 실망할거라고 말했다. 그런데 내가 먹은 카레 중에서 제일 맛있었다. 크림 파스타도 약간 매콤한 맛이 있어서 느끼하지 않았다.


계산을 하고, 지나왔던 골목을 다시 걸었다. 되돌아가면서 경주를 마음껏 담았다. 그리고 내가 꼭 가보고싶었던 카페 앞에 도착했다. 그 곳 역시 인기가 많아서 카페임에도 불구하고 웨이팅을 했다. 5분 정도 웨이팅을 하고 들어간 카페는 아까 봤던 식당보다 인테리어가 더 예뻤다. 원형테이블에 앉고 싶었지만 이미 손님이 앉아있어서 우리는 안쪽의 테이블에 앉았다. 동글동글 귀여운 사장님이 주문을 받았다. 메뉴판을 깜빡하고 주지못해 미안하다고 하셨는데 우리는 원래 메뉴판을 주는 건지 몰랐기 때문에 전혀 상관없었다. 세영이는 감귤에이드, 나는 자몽에이드를 시켰다. 직접 만든 과일청으로 만드신다고 하셨다. 나는 내가 시킨 음료가 마음에 들었는데 세영이는 실망했나보다. 나는 감귤에이드도 괜찮던데, 사람 입맛이 다 다르다고 세영이는 반이나 남겼다.



내가 입은 옷이 참 카페랑 잘어울린다고 세영이가 말했다. 날씨가 쌀쌀해서 입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너무 입고싶어서 입은 핑크색의 블라우스가 오늘 한껏 나를 예쁘게 만들어줬다. 괜시리 사진에 담고싶어서 옷이 보이게끔 사진을 많이 찍었다.



나는 내 감성의 사진을 좋아한다. 그런데 세영이가 찍은 사진과 내가 찍은 사진은 참 다른 느낌이 든다. 나랑 다르게 찍었지만 너무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앉은 자리 옆에 있던 창문엔 책이 놓여있었다. 우연히 발견한 책을 펼치니 곳곳에 박혀있던 감정들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마음에 새겨두고 싶은 문구를 찍었다. 좋은 책을 만나 즐거웠다. (사실 이 책을 사고싶어서 인터넷에 검색했는데 품절이었다. 그리고 카페를 나와 잠시 들렀던 책방에서 이 책을 발견해서 구매하려고 하다가 말았는데, 살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열심히 사진을 찍고, 다시 옷을 입고 나와서 거리를 걸었다. 우리는 가고 싶은 곳이 많기 때문에 바삐 움직여야 했다. 카페를 나와 소품샵에 들렀다. '삼덕마켓'에서 귀여운 피규어들과 소품들을 구경한 후 파란 손바닥 사탕 2개를 구매했다. 그리고 대릉원사진관 외부만 찍고, 스쳐지나가서 책방 두 곳에 갔다. 처음 들렀던 책방에서는 일러스트스티커만 구매하고, 두번째로 들렀던 '어서어서'에서는 책을 구매했다. 세영이와 나 둘 다 어떤 책을 살 지 고민하다가 남준이의 추천도서목록에 있던 책으로 사기로 했다. 세영이는 <밤 열한시>, 나는 <수선화에게>를 구매하고 책봉투와 책갈피를 받았다. 그리고 중간에 놓여있는 테이블에 앉아서 책갈피에 열심히 스탬프를 찍었다. 너무 세게 눌러서 테두리까지 다 찍혀버렸지만 뭐 어때, 그냥 추억이다.



책방을 나와서 사진을 찍었다. 나의 두번째 인생네컷을 세영이와 단 둘이 찍었다. 엄마가 왜 나한테 피부화장 좀 하라고 했는지 이제 알 것 같다. 홍조때문에 호빵맨같이 나와서 너무 아쉬웠다. 일부러 포즈도 열심히 구상했는데 이게 뭐람.. 슬펐다.



2시쯤에 점심을 먹었는데 벌써 5시반이다.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서 '홍앤리식탁'에 갔다. 여기도 인스타그램에서 유명한 핫플레이스였다. 그치만 시즈닝보다는 웨이팅이 길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가정식 식당이었는데 주마다 메뉴가 바뀌는 듯 했다. 우리가 갔을 때는 부대찌개세트와 불고기정식 세트 뿐이어서 불고기정식으로 두 개를 주문했다. 예전에 실습할 때 친구들이랑 먹었던 부산의 식당과 비슷했지만 어쨌든 맛있어서 다 먹었다. 오랜만에 먹는 재첩국, 그리고 김치가 맛있었다.


저녁을 다 먹고 다시 택시를 탔다. 바람곳 게스트하우스에 드디어 체크인을 하러 갔다. 상당히 구석에 있는듯 했는데 호스트가 너무 친절했다. (약간 느끼하기도 했다.) 아무튼 깔끔하고 좋았다. 우리는 2인실을 예약했는데 예약이 덜 찼는지 4인실로 바꿔주셨다. 덕분에 2층침대를 쓰지 않고 두명 다 1층에서 잘 수 있게 되었다. 짐정리를 하고, 잠시 쉬다가 다시 밖을 나섰다. 하루종일 먹은 것 밖에 없는데 야경이라도 봐야지! 여름에도 경주에 왔었는데, 그 땐 첨성대 야경만 봤다. 그런데 안압지 야경이 더 아름다웠다. 입장권 유무의 차이인가.. 2천원밖에 안하는데 내 눈이 본 풍경은 감히 가격에 비례하지 못했다. 아름다운 야경을 마음껏 감상하는 동안 지켜보는 여행객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다 밝았다. 모두 소중한 추억을 하나 얻었구나.


인스타그램에서 안압지를 돌 땐 역방향으로 돌라고 했다. 그러나 그런 말을 지킬 때가 아니었다. 그저 불빛이 보이는 곳으로 걷다보니 여행객들과 같은 방향으로 걷고있었다. 그런들 어떠하랴. 상관없었다. 또 다시 삼각대를 꺼내들고 열심히 뛰었으나 사진은 건지지 못했다. 셀카를 찍는데 화질이 거의 옛날 일반폰 느낌이랄까.. 밤에 사진찍기 참 힘들었다. 한 바퀴를 다 돌고나니 발이 아파서 집에 가고싶었다. 나올때 봤던 알통닭강정이 생각나서 야식을 먹기로 하고, 택시에 탔다. 그런데 택시아저씨가 주소찍기 귀찮았는지 자꾸 경주역 근처면 되냐는 듯이 물었다. 짜증나서 그냥 경주역에 내려달라고 하고 실컷 욕을 했다. 불편한 새신발을 질질끌고 알통닭강정을 사러 갔다. 2인분을 사서 게스트하우스에 갔는데, 세영이가 부끄러운지 로비에서 먹지 말고 방에서 먹자고 했다. 난 뭐 아무렇게나 해도 상관없어서 알겠다고 했다. 맛있게 야식을 먹고, 씻고, 사진정리를 하고, 12시도 안되어서 잠들어버렸다.



2/23. 금요일. 날씨 맑음
일찍 잠들어버린 탓에 다음날 무엇을 할 지 하나도 계획이 없었다. 9시에 세영이가 깨워서 일어났는데, 내가 깊게 잠들어서 그런지 세영이가 여려번 깨웠는데도 미동도 없었다고. 하하. 부랴부랴 머리를 감고 다시 방에와서 준비를 했다. 조식은 먹고싶었지만 설거지 하기 귀찮아서 그냥 안먹고 나왔다.


택시를 타고 보문단지에 갔다. 딱히 갈 곳은 없고 콜로세움이 생각나서 콜로세움에 내려달라고 했다. 인터넷에 검색했을 때 사실 사진 몇장 찍고나면 할 거 없다고 했는데 그 말이 사실이었다. 그 곳에 들렀던 사람들은 분명히 오는 여행객이 많아서 사진찍을 때 힘들다고 했는데, 우리가 갔을 땐 아무도 없는 황량한 콜로세움이었다. 다시 삼각대를 펼쳐서 앉아서 찍고, 서서 찍고, 혼자 찍고 난리를 피웠다. 다 찍고나니 배가 고파서 바로 옆에 있는 식당에 들어갔다. 여기에 올 때 택시아저씨가 유명한 한우물회집을 소개해줬는데 생각나지 않았다. 어제 너무 찾아다녔더니 오늘은 그냥 신경쓰지 않고 먹고싶었던 것 같다. 청와대칼국수, 소고기국밥, 낙지만두를 시켰다. 다른 칼국수와 다르게 국물에서 사골같은 맛이 났다. 딱히 내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그냥 먹었다.


다 먹고나니 정말 할 것이 없었다. 콜로세움 옆에 보문호가 있어서 호수를 걸을까 했지만 발도 아프고.. 그냥 다시 택시타고 터미널로 갔다. 세영이가 어차피 일찍 출발해야 했기 때문에 괜찮았다. 터미널에 가서 마산가는 표를 예매했다. 1시 10분. 한 시간이 비어서 터미널에 있는 이디야카페에 가서 브라우니쇼콜라를 시켰다. 우리 참 취향 비슷하다. 둘 다 같은 걸 주문했다.


아쉽다. 맛있게 먹고 서로 다른 지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허전했다. 어제는 신나게 놀았는데, 오늘은 너무 빨리 헤어지는 것 같았다. 그런 마음도 잠깐, 바로 곯아떨어졌다. 양산을 거쳐서 마산에 도착, 100번 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 불편한 신발을 얼른 벗고 싶었기 때문에 발걸음을 빨리했다. 고작 1박 2일이지만 돈은 10만원 가까이 썼다. 하지만 아깝지 않은 여행이었다.